아주 끔찍한 표상, 혹은 아주 버러지 같은 시덥잖은 싸구려 감정.
J,
사람들은 사건 때문에 혼란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사건에 대한 표상 때문에 혼란에 빠진다고 하더군요.
죽음이 끔찍한 것이 아니라 죽음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표상이 끔찍한 것이고
깨어진 꽃병 자체가 끔찍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신과 꽃병을 동일시하여
꽃병이 깨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온 마음으로 꽃병에 집착하는 것이
상처를 입히는 것이라구요.
나의 꽃병은 산산조각나 깨어졌습니다.
이렇게 쉽게.
이리도 간단하게.
이리도 빨리.
네...많이 아팠습니다.
무엇보다도 수치심이 들더군요.
지난 4년 반동안
그토록 소중하다 생각되어 졌던 시간들이.
감정들이. 혹은 추억들이.
그 노력들이.
실은 싸구려. 아니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런 싸구려 연대감을 사랑이라 믿었기 때문에.
그건 마치 여섯살 어린 아이에게
너가 친구라 여기고 애지중지 껴안고 잠에 드는 그 강아지 인형은
그저 손 때 탄 더러운 솜덩어리일 뿐이라단다 라고 말하는
그런 잔인한 일과도 같기 때문에.
나는 그래서 감정이 싫습니다.
어떤 의미를 두는가에 따라 아주 소중한, 하지만 아주 하찮은
쉽게 잊혀질 그런 것이 되어버리는 감정들이 참 싫습니다.
어쩜 저에게 4년여간의 시간을 돌이키며
슬퍼할 겨를도 주지 않는지.
지인들은 저에게 모두 같은 충고를 해주더군요.
그냥 욕하고 지나치라고.
네. 그것이 가장 옳은 답이겠죠.
사랑이라는 표상을 욕으로 바꿔버리면
이제 그 감정은 쉽게 잊혀질,
아무것도 아닌게 되어버릴테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쉽게 욕으로 넘겨버리면
그동안의 저의 노력들.
사랑이 아닌 것을 사랑이라 믿었던 나의 표상과 함께 나까지
산산조각 나겠지요.
그리고 소중하다 여겼던 만큼
그만큼 나의 살점도 떨어져 나가고
피가 철철나겠지요.
하지만 이 상처를 통해 내가 더 성장하고 나아갈 수 있다면
그 또한 받아들이고 마음껏 아프기로.
그렇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네요.
그래도 기도 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욕을 좋아하지도, 하지도 않지만
이럴 땐 욕이 참 유용하다는 웃기지도 않는 생각이 드네요.
이런 개새끼.
이 한마디로 정리하기엔 천번도 부족하지만.
억장이 무너지는 밤입니다.
저는 이제 다시 기도하러 가봐야겠습니다.
다음엔 좀 더 성숙하고 좀 더 성장한 내가 되어 돌아올 수 있길.
지금은 아니더라도 다음에는. 다음에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