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이야기
J,
오늘은 감정 하나를 버리러 왔습니다.
내 안에 남아있던 미움. 그것 말입니다.
저는 얀 이야기 라는 책을 아주 아낍니다.
아주 얇은 책인데, 주인공이 얀 이라는 고양이고,
얀은 초원에 조그만 오두막에서 평화로이 잘 살다
카와카마스라는 곤들메기가 얀의 집을 찾아오면서 곤들메기를 알게되는데
이 카와카마스는 얀을 처음 만날 때부터 하나씩 얀의 물건을 빌려가기 시작합니다.
양심이 있으면 빌려간 물건은 좀 돌려주면서 새 물건을 빌려갈것이지
이 사기꾼같은 곤들메기는 계속해서 얀의 물건을 가져가기만 합니다.
처음엔 마치 친구처럼 다정하게 다가온 곤들메기는
얀과 조금 얘기나 나눠주곤 물건을 가져가더니
한 달 동안이나 잠수를 타기도 합니다.
그 후로 또다시 나타나 온갖 말을 늘어놓다
홍차와 설탕을 꾸어달라더니
약속한 날엔 나타나지도 않죠.
이 정도면 정말 해도해도 너무하다 싶은데
얀은 또 곤들메기를 만나 그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다 빌려주고 맙니다.
그리곤 혼자 초원의 비탈길을 오르며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행복감으로 차올랐답니다.
자꾸 부탁하는 것을 애처로이 여기거나
여러 생각 않고서 순순히 꾸어주었던 일이
얀으로서는 몹시 기쁘고 행복했다 합니다.
예전처럼 다시 곤들메기를 만날수 있어서.
단지 그 이유만으로 곤들메기가 얀에게서 빌려간 물건을 돌려주지 않아도
아무것도 아까워 하지도 않고 계속해서 주기만 하는 것을 불평하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끝이 났구나 싶겠지만 이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만약 당신이 카와카마스는 늘 꾸기만 하고 꾸어 간 것들을 갚을 줄 몰라
교활하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당신이 조금 지쳐 있다는 증거라고.
저는 아주 많이 지쳐 있었습니다.
제 안에 선함이 존재 할까 싶을정도로.
그래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것보다 많이 아팠습니다.
왜 곤들메기는 그래야 했을까.
왜 그래야만 했는지, 어떻게 그럴수 있는지
그렇다면 곤들메기에게 얀은 대체 무엇이었는지부터 시작해서
결국 곤들메기에게 얀은, 얀의 진심은 아무것도 아닌것이었나 하는 생각에
그런 생각들에 많이 베었습니다.
나도 이 모든 것들이 상관 없을 정도로 곤들메기를 사랑한 얀처럼
오히려 줄 수 있음에 행복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어서 스스로 상처를 헤집고 그럼에도 그런 생각을 맘출수가 없었습니다.
내 자유 의지로 조절할 수 없어 더 두려웠습니다.
내가 날 더 상처주고 있음을 알면서도 멈춰지지가 않았습니다.
거친 생각과 감정의 소용돌이 앞에 나는 그저 휩쓸리는 것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곤들메기를 사기꾼 아닌 친구로 볼 수 있게 되는 날이 온다면.
저는 진정한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또 그런 사랑을 받고 싶습니다.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 않는
모든 것을 견딜 수 있는 진정한 사랑 말입니다.
그건 단순한 감정과는 다르다는 것도 배웠지요.
감정은 모든 것을 견딜 수도, 오래 참을 수도,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 않을 수도 없으니까.
얀은 진정으로 사랑을 했겠지요.
하지만 곤들메기는?
그게 왜 중요하냐 할 수도 있겠지만
혼자하는 우정, 사랑이,
본질을 잃은 우정, 사랑이
진정 우정이고 사랑이던가요.
이제 저는 얀 이야기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동감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 또한 빠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주기만 하는게 아니라 주고 받는 거라고.
그리고 주기만 해도 행복할 수 있는 선함은
적어도 저에겐 존재 할수 없다는걸.
진정한 사랑을 받은 사람만이
그 사랑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래서 J,
오늘도 저는 당신을 붙들고 이렇게 기도합니다.
그런데.
얀처럼 미워하지도 않고 고깝게 여기지도 않으면서 행복해하는것 까진 힘들다해도
어떻게 미워하지 않고 그럴려니 넘길수 있는지.
아직 전 거기까진 선하지 못한가 봅니다.
그 또한 제가 기도하는 이유겠죠.
아무리 그래도 J,
저는 누군가를 미워해야하는 그런 지옥 속에 살고 싶지 않습니다.
차라리, 아파야 하는 한이 있더라도요.
여기, 제 미움을 드리니 제게 위로를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