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jeong
2015. 1. 22. 11:21
나는 자신이 있었다.
나는 내가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온 우주의 풍요로움이 나를 도와줄 거라고 굳게 믿었다.
문제는 사랑이 사랑 자신을
배반하는 일 같은 것을 상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랑에도 유효 기간이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사랑의 속성이었다.
우리는 사랑이 영원할 거라고 믿게 하는 것 자체가
이미 사랑이 가지고 있는 속임수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사랑의 빛이 내 마음 속에서 밝아질 수록
외로움이라는 그림자가 그만큼 짙게 드리워진다는 건
세상천지가 다 아는 일이었지만,
나만은 다를 거라고,
우리의 사랑만은 다를 거라고 믿었다.
그것 자체도 사랑이 우리를 속이는 방식이라고
지희는 분석하곤 했었다.
그 때 내 나이 스물 둘,
유학생이 되면 공부를 하는 게 제일 힘들 줄 알았는데
실은 외로움이라는 큰 적과 싸워야 한다는 것도,
게다가 누군가 한 사람만을 사랑하게 되면
몸살처럼 늘 신열이 가시지 않는다는 것도
나는 몰랐던 것이다.
그것을 알게 되면 과연 누군가를,
세상을 다 준대도 바꿀수 없다고 고집을 피우면서
한 사람만을 사랑하려고 하는 바보가 또 있을까.
공지영 - 사랑한 후에 오는 것들